제 그릇이 더 커지면 좋겠습니다
한 스승이 한 젊은 제자를 두었는데 제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하는 일마다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. 하루는 스승이 제자를 불러서 소금 한 사발과 마실 물을 한 컵 가져오라고 시키더니 스승은 사발에 있는 소금을 컵 속에 넣은 다음에 그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. “물맛이 어떠냐?” 스승의 질문에 제자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합니다. “예, 무척이나 짭니다.” 스승은 곧이어 제자를 호수로 데려가서 조금 전과 같은 양의 소금을 호수에 집어넣고 휘휘 저어 그 물을 마시게 한 다음 다시 물었습니다. “맛이 어떠냐? 짜지 않느냐?” “짜다니요? 전혀 안 짭니다. 그저 시원합니다.”라고 제자가 대답했습니다. 그러자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습니다. “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다. 짠맛의 정도는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. 네 속에 고통이 있다면 네가 컵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어라.” 이번 주간에 제 아내가 대뜸 저에게 ‘요즘 당신이 아이들에게 화가 많아졌어요.’ 한 마디 합니다.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. 한 주 동안 기대한 대로 따라와주지 않는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내 자신의 불평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하고 질기고 많았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. 더 잘 해 보겠다고 늘 화이팅해 보지만 그것이 얼마 가질 않는 고질병 같습니다. 이것이 비단 저 자신 뿐만의 이야기는 아닐겁니다. 자신 안에 소금과 같이 짠 고통을 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. 누구나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. 때로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고통, 때로는 상황이 가져다 주는 고통, 때로는 기대치 않았던 문제로부터 다가오는 고통도 있습니다. 문제는 그 고통을 담는 우리의 마음입니다.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불평하면서 살고 있는지 잘 인식하면서 삽니까? 나 자신은 하나도 바뀌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신앙여정 속에서 우리를 너무 혹독하게 다루시는 것처럼 느끼면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? 이 여정에서 문제의 핵심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.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고통을 통해서, 하나님을 좀 더 알려고 해야 합니다. 당장의 고통과 문제만을 해결하는데 여러분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 한, 더 이상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.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에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무언가가 있음을 믿기에 그 모든 일들을 담을 수 있는 지금보다 조금 더 큰 그릇이 되기를 소망합니다. 한 주간 가족 혹은 직장에서 계속 밀려드는 삶의 무게에 눌려서 피로와 허탈감에 눈물과 한숨이 날 때도 있지만 고통은 피해야 할 대상도, 싸워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. 오히려 품어야 할 대상입니다. 고통은 변화를 갈망하게 하고 소원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. 그 고통이 어떤 불평의 요소가 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아직 작은 컵에 불과한 겁니다. 그 고통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우리의 마음을 호수의 크기로 넓히는 일입니다. 그러면 짠 맛 대신 시원한 맛이 느껴지게 될 겁니다. “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” (빌립보서2:5) 기왕이면 저도 예수님의 마음처럼 부모 말 안듣는 자녀들, 그리고 주변의 미운 감정이 드는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호수보다 더 넓은 바다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.